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악바르 대제 (문단 편집) == 평가 == 50년에 가까운 치세 동안 지역 강국에 불과했던 무굴 제국을 북인도 전체를 다스리는 거대한 대제국으로 탈바꿈시키며 무굴 제국의 부와 영토를 3배 넘게 늘렸다. 경제에 관심이 많아 인도 전역을 하나의 경제권을 묶어 민생에 신경을 썼으며, 종교의 자유를 중시하여 [[힌두교]], [[시크교]], [[자이나교]] 등 다양한 종교들을 끌어안았고 그 어떤 무슬림 군주보다 [[세속주의]]적인 면을 보였다. 군사면 군사, 경제면 경제, 종교면 종교 등 수많은 업적을 남긴 다재다능한 군주로 생각하면 된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무굴 제국은 열려있는 개방적인 대제국으로 성장하며 굉장히 유연한 형태를 띠었다. 악바르의 업적은 사회적으로도 다양하다. 비무슬림들에 대한 인두세를 없애 힌두교도들의 불만을 줄였고 [[사티]] 풍습을 폐지하고 [[과부]]의 재가를 허용했으며 결혼 연령을 높여 [[조혼]]을 금하는 여성 우대 정책도 실시했다. 여성들을 차별하는 풍조가 강한 현대의 극단주의 이슬람과 비교하면 오히려 그때가 더 나을 정도의 여성 우대였던 편에 속한다. 또한 아프간계 민족 출신이던 악바르는 라지푸트족들을 포용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여러 라지푸트 공주들을 아내로 맞이하고 기존 왕족들과 동일하게 대우하는 한편 인도 각지의 족장들에게 관직을 내려 통합에 힘썼다. 모든 귀족들을 33등급으로 나누어 체계적인 행정구조를 만드는가 하면 '만사브다르' 제도를 만들어 군사 제도까지 확실히 정비했다. 인도인들은 악바르 대제에 대한 평가가 나쁘지 않다. 물론 치토르 요새를 점령했을 당시 많은 힌두 반란군들을 잔혹하게 진압한 것 때문에 일부 욕을 먹는 부분도 있지만 웬만하면 좋게 쳐주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악바르가 종교적으로 관용적인 정책을 펴고 힌두교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기 때문. 후임 [[아우랑제브]] 등이 힌두교도들을 가혹하게 탄압해서 거의 인도인들에게 악마로 여겨지는 것에 비하면 악바르 대제의 이미지는 선녀에 가깝다. 인도인들에게 무굴 제국의 이미지가 썩 좋은 편이 아니긴 하지만 악바르는 유난할 정도로 힌두교도들에게 관용적이었기 때문에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대의 [[한족]]들이 [[청나라]]의 [[강희제]]에 대해 생각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인도 교과서에도 악바르에 대한 내용이 자세하게 실려있고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과 함께 인도 역사의 기념비적인 성군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파키스탄]]에서는 의외로 평가가 그저 그렇다. 이슬람 극단주의적인 면이 강한 파키스탄에서, 종교의 관용을 중시했던 악바르의 행보는 썩 달가운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파키스탄에서 악바르를 천시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오히려 힌두교도들을 적극적으로 탄압했던 [[아우랑제브]]의 인기가 더 높은 경우도 많다. 파키스탄의 교과서에는 오히려 아우랑제브 시절을 무굴 제국의 전성기로 평가하면서 그에 대해 긴 서술과 주석을 달아놓고 있지만 악바르 대제의 경우 고의적으로 무시하거나 누락한 것도 많고 서술 분량도 아우랑제브에 비하면 확연히 적다고 한다. 특히 악바르 대제가 라지푸트인들과의 융합을 꾀하면서 이들에게 존중을 베풀었던 것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한마디로 말하면 관용 따윈 필요없었고 무조건 이슬람을 밀어붙여야만 했다는 것이다. 악바르의 자유주의적인 정책 덕분에 무굴 제국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현대의 [[몽골인]](특히 [[외몽골]]인) 민족주의자들이 [[원나라]]의 [[쿠빌라이 칸]]에 대해 생각하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나마 파키스탄의 세속주의자들에게는 평가가 좋은 편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악바르 대제가 지금의 방글라데시 땅을 정복한 것 때문에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린다. 특히 한때 방글라데시를 지배했고 현재까지도 방글라데시와 사이가 좋지 않은 파키스탄이 무굴 제국을 자신들의 전신격 국가로 여기는 점 또한 방글라데시에서 악바르 대제를 포함한 무굴 제국의 명군들에 대한 평가가 호평과 혹평을 넘나들게 만들고 있다. 그렇다 보니 방글라데시의 [[벵골인]] 민족주의자들은 경우에 따라 악바르 대제를 침략자로 여기며 증오하기도 한다. 그래도 악바르 대제가 대체로 벵골인을 포함한 피지배민족들에게 관용을 베푼 편이었다는 점 때문에, 방글라데시 내에서 악바르 대제에 대한 평가는 적어도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의 파키스탄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로힝야]]족의 경우 자기 조상들이 지금의 방글라데시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악바르 대제에 대한 평가는 전형적인 제3자의 입장이다. 현대 로힝야족이 자신들의 민족정체성을 [[인도 제국]] 시절에 지금의 [[미얀마]] 땅으로 이주한 치타공인(벵골인의 지파)들의 후손이 아니라 7세기에 지금의 미얀마 땅으로 이주한 아랍 상인들의 후손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힝야족은 스스로를 무굴 제국과 무관한 민족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